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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때만해도 1인 1상^^ 한상 차려놓구 여럿이 먹는 지금의 식문화 바뀌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1인 ㅡ,.ㅡ 출처 : 외국 사이트 펌 궁궐같이 목조 주택이 아니라서 건조할땐 목이 칼칼해서 요즘 백성들이 서양의 저 해괴한 장치를 쓴다 합니다 거걸쓰면 곰방대에서 연기



나와서 건기를 잡아준다하여 동절기에 백성들이 마이 쓴다 하옵니다 근데 사후 관리를 못해 저러케 부식이 되어도 as가 불가하다옵니다 마마 이백성들에게 저딴거 필요없는 목조주택 하나씩 내려주옵소소 ~~~ 나랏말쌈이 짱깨랑 또까타서 내 이렁 젖차로 28개를 맹그오니 .. 한복입고 피는거 멀리서 보면 신선인데, 가까이 가면 화생방 훈련이었음. ㅋㅋㅋㅋ 근데 담배 ㅈㄴ 오래펴도 102살 까지 버티심. 그 때 하인 하던 놈들이 100명이라면 지금 나 만큼 사는 놈은



그때가 광해군 시점이니, 대략 광해군때부터 담배가 널리 퍼져나가기 시작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당시만 해도 담배의 위험성은 커녕 오히려 약초라고 알려지면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담배를 피워댔고 심지어 기어다니던 아이들이, 두발로 설 시즘에 담배를 물리는 경우조차 있을 정도였죠. 실화 입니다. 이름도 남쪽에서 전해진 신령스러운 풀이다... 해서 남령초라고 불리워지기도 했고, 일본을 통해 전해졌다고 왜초라고도 불렸죠 물론 지금처럼 가공된 형태의 담배가 아니니, 담뱃대와 불이 필요하고, 계층에 따라 잘사는 양반들은 담뱃대를 금으로 만들기도 하면서, 신분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일부러



1890년 ~ 1910년 무렵 사진으로 보는 조선시대 풍경 대군마마 어리석은 백성들이 많습니다 Tmi 울 할아버지 곰방대 폈음. 도요토미 히데요시 : 내가 18살 때부터 노부나가 하인 생활을 시작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조선시대 담배의 역사. 나 관통이가 곰방대 물고 있는거 존나보고싶은데 연지곤지 찍고 결혼식 ㅎ 저 어릴때만해도 동네 어귀에 저러한 장승이 있었던 것 같기도..... 서당? 널 뛰는 아낙들 ㅎ 장날?? 뉘신지?? 혹시 스님? 곡물에 혼입된 멈테기를 키를 이용해 까부는듯~ ㅎ





신식군대 군악대? 말을 타신 양반이 꽤 높은 직위인듯~ 가래질은 아는데... 이건 땅을 다질때 쓰는 건가요? 잘 몰라서 PASS 닭 장수? 민가인지 주막인지?: 교자상이 정겹네요 ㅎ (지금도 아버지 집에 가면 저와 비슷한 교자상 있음 ㅎㅎ) 곰방대 ㅎㅎ 어?! 일반 담배도 피우시네 ㅎㅎ 마님~~~ㅎㅎ



나 혼자 뿐이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 잘난 놈 전장에 보내고 못난 놈 할복시키고 간신같이 배신하는 새끼들... 다 베어 죽였다 고니시야 곰방대 하나 찔러봐라 조선시대에 심지어 임금 앞에서도 신하가 맞담배를 피운걸 잘 모르는 분들이 많죠. 한번 ... 슬슬.... 조선시대 담배의 역사를 알아보죠 담배는 남아메리카 중앙 고원지대가 원산지라고 하죠. 이 담배가 15세기에 다른 나라들에도 점차 전파가 되는데, 조선의 경우 임진왜란 이후에 들어왔다고 하죠.



아펜절러도 1885년 우리나라에 처음 방문했을 때 어린 아이들이 곰방대를 물고 있는 모습에 놀랐다고 기록에 남아있기도 하죠. 그러다 보니... 서당에서 훈장이 담배를 피우며 경전을 가르키고, 학생도 담배를 피우며 수업을 이어나가는 풍경도 연출되고,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담배피우는 방법을 알려주는게 일상적인 모습이었고, 궁 안에서도 임금 앞에서 담배를 피우기도 했죠 물론, 그렇게 일상적이다 보니, 담배불로 인한 화재도 간혹 일어나고 말입니다. 초가집도 태워먹고... 산불도 나구요...



맞담배질 하는게 일상다반사가 되어버렸고, 담배로 교역을 하기도 했죠. 심지어 병자호란때 중국으로 끌려간 포로를 되찾기 위해서, 담배를 바치고 포로를 찾기도 했다는 말도 있죠. 역사적으로 알려진 네덜란드 상인인 하멜은 조선에 머물 당시 '하멜표류기'를 통해 "조선 사람들은 담배를 좋아해 아이들도 4, 5세만 되면 담배를 피우며 남녀노소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적기도 했죠. 이후 구한말 선교사



뭐 결국... 나중에는 시간이 흘러서, 담배의 해악성이 드러나서... 점차 사회적으로 해로운것이다... 라는 인식이 퍼져 나갔지만.. 당연히 이미 중독된 사람들은 끊지 못했죠. 오죽하면 당시 학자들도, 담배 피울 시간에 공부를 하면 큰 인물이 될것이다.. 뭐 이런 말까지 하기도 하죠. 뭐 국가의 고위 공무원들 조차도... 국사를 논하다가 막히면... 담배나 한대 피웁시다.. 하면서... 담배 태우러 다니던 시절이었죠. 실제 기록에... 병자호란 직전에도, 관료들은 모여서 담배나 피워댔지, 제대로 방비하고자 나서는 자가 없었다.. 라는 기록까지 있을 정도죠. 이후로... 영조때



담뱃대를 길게 제작하기도 했죠. (장죽) 즉, 담뱃대가 길면, 혼자 불을 붙히기가 번거롭게 되는데, 결국 불을 붙여주는, 시중을 드는 연동이라고 하여 어린 노비를 데리고 있다는거죠. 반면에 평민들은 짧은 형태의 담뱃대인 곰방대를 사용해서 혼자 불붙여가며 피우게 되죠. 그만큼 담배와 담뱃대가 널리 보급이 되다 보니 생기는 사회적인 유행이었죠. googletag.cmd.push(func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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